역사새 글

영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참 많더군요.

cCttk명 읽음15개 덧글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으면 만주벌판이 모두 우리땅이었을텐데"

"요동정벌을 포기하고 위화도 회군을 한 이성계가 죽일놈이야!"

"당나라랑 손잡고 고구려 팔아먹은 김춘추가 역적이야!"

이런 말들을 들으면 참 역겨워서 구역질이 나오더군요.

그놈의 압록강-두만강 이북 땅이 뭐가 그리 좋은 땅이라고, 저렇게 집착을 해댈까요?

국토가 넓으면 자신한테 돌아오는게 있는 것도 아니면서, 넓은 영토를 못 가진거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한다는 게

참으로 한심해 보였습니다.

그들이 환장하는 "만주벌판"을 포함해 넓은 영토를 갖고 있는 중국보다 한국이 훨씬 1인당 국민소득도 높고

윤택한 삶을 살고 있는데도(중국을 비하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왜 중국 "대륙"의 넓은 영토만을 부러워할까요?

룩셈부르크나 싱가포르가 도시국가라고 해서 그 나라 국민들이 그 사실을 부끄러워한다는 소리를 전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영토가 넓은 나라도 많지만 영토가 더 좁은 나라들도 훨씬 많은데, 왜 우리의

땅이 좁다고 부끄러워하면서 더 넓은 영토에만 환장해야 할까요?

그렇게 넓은 영토가 좋으면 한국말고 영토 넓은 다른 나라로 귀화해서 살든가요.

일부는 "다물"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어까지 만들어가며 옛 고구려 땅을 되찾자고 핏대를 올리는 사람들까지 있는데,

일본한테 우리나라가 "다물"당해서 일제 식민통치시대로 되돌아가면 참 좋겠습니다 그쵸? ㅉㅉ

역사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있는 분이라면 모두가 극혐하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환단고기".

그러나 그 책 하나만 금서로 지정하고 없애버린다고 해서 "환빠"들이 사라질까요?

영토제일주의와 민족이기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자성이 없는 이상, 한국이 가상의 "넓은 영토"를 가지고 세계를

통치했다는 가짜 역사책은 이름만 바뀌어서 또 다시 쏟아질 겁니다.

지금은 남의 나라 땅이 된 지역을 되찾자고 너무나 당연하게 말하는 행위가 나치즘이나 다를게 없다는 사실을 제발

많은 사람들이 깨달아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오늘 귀농한 농민의 글입니다
http://ilwar.com/history/240811
211.174.*.*
근대국가 개념을 옛날 국가에 투영시켜서 '지도로서 영토를 만드는' 짓을 하는게 참 웃기는 짓이지요ㅋㅋ

Ps.다행히도 일워 역사밭에서는 환의 ㅎ도 언급하면 안된다는 룰이 사이트 초창기부터 있었답니다ㅋ
농담 아니고 진지하게
거시기 사이즈와 분명 상관있는 열등감이라는 데 오른손목 건닭
그래도 신라의 통일 과정에 한계가 뚜렷했고, 그 이후로 사대주의식 문화가 급격하게 보급되었지요.
자주성 상실이라는 측면은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초등학교 때 이후론 그렇게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닭...
정말 유치해서 그거 크기가지고 자존심싸움 했던 때였으니...
글쎄요. 그것 보다는 신라 백제 고구려를 다 북한과 남한같은 입장이다라는 생각이 안들까요? 
한민족이지만 서로 싸우고 있는데.... 그리고 신라가 자주적으로 행동한 거지요.  제가 보기엔 신라가 당을 이용한 것 처럼 보이는데... 
정약용의 말로 나농의 의견을 갈음하겠닭.

"고구려 때는 강토를 멀리 개척하였다. 그 북부는 실위(室韋)[지금의 만주로 또한 북부에 들어있다]에 접했고, 그 남부는 개모(蓋牟)[지금의 산해관(山海關) 이동이 모두 그 땅이다]에 이르렀다.

고려 이래로부터 북부남부는 모두 거란이 차지하였고, 금, 원 이후 다시는 우리 것으로 되찾지 못하였고 압록강 일대가 천연의 경계를 이루게 되었다.
우리 세종, 세조 때에 이르러 마천(摩天) 이북으로 천리의 땅을 개척하고 육진을 바둑돌처럼 설치하였으며, 밖으로는 창해에 닿았다. 그러나 요동은 끝내 되찾지 못하였다. (다른 여러) 논자는 그것을 유감으로 여긴다.

신(臣)은 요동을 되찾지 못한 것이 국가에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요동은, 화이(華夷)가 왕래하는 요충지이다. 여진은 요동을 지나지 않으면 중국에 도달할 수 없고, 선비, 거란은 요동을 얻지 않으면 그 적을 제어할 수 없으며, 몽고는 요동을 지나지 않으면 여진과 통할 수 없다. 진실로 삼가고 온순하여 무(武)가 없는 국가가 요동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 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화친하면 사신을 맞아들이는 큰 비용과 병정을 징발하는 부역에 한 나라의 힘이 고갈되어 지탱할 수 없다. 화친을 잃으면 사면이 적이니 병화가 없는 때가 없을 것이므로 한 나라의 힘이 고갈되어 지탱할 수 없다.

이조(二祖 : 태조와 태종?) 때는 대명이 북경에 도읍을 정하여 요동과 심양의 사람들이 기내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를 엿보아도 차지할 수 없었다. 설령 요동과 심양이 오히려 여러 오랑캐에 속했다 해도 이조(二祖)께서 이를 취하지 않았을 것이니 어째서인가? 척박한 황무지로 이득이 없는 땅을 얻고 천하에 적을 늘리는 행동은 영명한 군주라면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당 때에도 오히려 주, 진 때의 옛 일을 살펴 도읍을 관중에 정한 후에 위세를 얻어 천하를 제어하였다. 고로 중국의 지략가들이 논한 바는 오로지 동서 이경(낙양과 장안)의 우열뿐이었다.

대명의 성조 문황제는 세상을 뒤덮을 뛰어난 지략이 있었으나 강성한 몽고와 여진을 멀리서 제어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마침내 대명[부](大名[府] : 北京)에 귀속시켰다. 이후 중국의 주인은 이를 바꾸지 않았고 대명[부]는 중국의 도읍이 되었다. 이러한즉, 요동에 대해 다시 말할 수 있었겠는가?

또 우리나라의 지세는 북으로 두 강[두만과 압록이다]을 경계로 삼고,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강역의 형태가 혼연히 천혜의 요새이니 요동을 얻는 것은 반대로 군더더기를 붙이는 것이다. 어찌 유감으로 여기겠는가?

그렇지만 진실로 나라가 부강하고 병사가 강성하여 하루아침에 천하를 다툴 뜻이 있고 한걸음이라도 중원을 엿보려 할 경우에는, 먼저 요동을 얻지 않고는 할 수 없다. 어쨌든 서로 요동을 얻고 동으로 여진을 평정하고 북으로 경계를 넓혀 흑룡강의 근원까지 올라가고 우측으로 몽고와 버틴다면 충분히 큰 나라가 될 수 있으니 이 또한 하나의 통쾌한 일이다."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역사교육과도 상관이 있다고 봅니다 저도 학창시절에 그렇게 배웠거든요 농님 글을 읽으니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기분이군요 관점의 전환이네요!
학창시절에 영토가 좁아졌다며 통일의 한계 부분에서 거론했닭. 교과서가 교학사였구농. 영토에 대한 열등의식같은 게 있는 것 같닭. 글쓴농의 글과 리 농의 댓글을 읽어보니 딱히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었구농. 하나 배워간닭.

'다물'은 정체불명까지는 아니고 주몽이 송양의 비류국을 복속시키면서 나타난 말이에요. 삼국사기가 그 출전이지요.


영토확장은 국가주의적인 입장에서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토를 얻으면 농작물을 얻고, 착취할 백성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저도 일워하기전엔 우익/국뽕스러움이 가득했습니다만 일워를 하고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국가의 입장을/기득권의 입장을 피지배층/서민인 나에게 투영할 이유가 없다는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만 영토가 작아서 약간의 아쉬움은 있습니다. 여권챙기기 너무 싫네요.

영토를 늘리는 방법은 있지요 서해의 우리영토를 매립하는 건 어떨건지요
무인도를 매립해서 새로운 땅을 만드는건 어떻농 버려진 섬들을 이용 해서 영토를 넓히자농
일본의 독도(리앙쿠르) 영유권 주장도 반도국과 섬나라의 특성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섬나라에게 영토는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임에 비해 반도국에게 영토는 뺏길 수도 있고 뺏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기본적으로 반도국은 대륙에 대해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빼앗기려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도 마찬가지로 독도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을, 일본은 그런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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