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새 글

자와군의 캡쳐프로젝트 145회

Cejfa명 읽음

1.나는 의존성이란, 상대방이 자기를 열심히 돌보아 준다는 확신이 없이는 적절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거나 자기가 완전하다는 느낌을 경험할 수 없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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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히 의존성의 욕구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정신과 의사들이 ‘수동성 의존적 성격장애’라고 부르는 정신적 장애로 고통을 받고 잇다. 이것은 아마도 모든 정신장애들 중에서 가장 평범한 장애일 것이다.

 이러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 즉 수동적으로 의존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사랑받기를 갈구하며, 다른 사람을 먼저 사랑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스캇 펙 『아직도 가야할 길』, 제2부, 「의존성을 경계하라」 중...




2.수구세력이 엄존하듯 노동귀족들은 있다. 스스로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이면서 노동자에 적대적 언행으로 호의호식하는 노동자, 세상은 그를 어김없이 노동귀족이라 부른다. 오늘의 언론인들은 사주에 예속된 언론노동자이면서 오랜 세월 반노동자적 보도를 일삼아왔다.


손석춘 『부자 신문 가난한 독자』, 제3부, 「누가 누굴 개혁하나」 중...




3.서양인들에게 서양 상품에 대한 동양의 낮은 수요는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아시아의 제품들이 주요 경제 부문에 걸쳐 유럽 시장에서 유럽의 상품과 성공적으로 경쟁한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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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카오로부터 들려온 기계식 시계에 대한 소문은 중국인 측에도 도달했다. “스스로 울리는 종”이라는 생각은 중국인들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고 예수회원들은 이러한 관심을 중국에 파고드는 기회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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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울리는 종”에 대한 천자들의 애착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17세기와 18세기 내내 시계와 자동 잧치, 그리고 그와 비슷한 아름답고 신기한 장치들이 끊임없이 베이징의 황궁으로 흘러들어갔다. 강희제는 황궁에 크고 작은 시계를 만드는 제작소를 차리기까지 했고 특유의 유연성을 보인 예수회원들은 예수회에서 전문 시계공을 선발해 중국 선교단에 포함시켰다.


카를로 M.치폴라 『시계와 문명』, 제2장 중...




4.똥팔씨 :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말들만 하는 거군요.

메뚝씨 : 그렇죠. 서로에게 필요한 독백들만 하는거죠. 어떻게든 대화를 해야 내가 지금 이상하게 살고 있다는 걸 망각할 수 있거든요. 어떻게든 떠들어야 해요. 벽 보고라고 떠들어야 갑갑한 마음과 존재의 불안이 지워지니까요.

똥팔씨 : 《예술과 책임》에선 그것을 ‘황홀경’이라고 표현했죠?

메뚝씨 : 극도의 쾌감이죠. 대화를 통해 밀려오는 창조적 보람, 각성의 긍지, 존재의 충만 같은 것들이죠. 그런데 그것은 대화의 최종점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도스토옙스키 시학의 제문제》에서는 이런 말이 나와요. “독백적 세계 속에서 제3의 것은 지워지지 않는다.” 제3의 것이 자기 세계를 창안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다하는 과정이에요. 제1의 것은 나라는 존재고, 제2의 것이 너와 나의 관계라면 제3의 것은 나와 너의 관계 이후의 세계를 말합니다. 새로운 내가 되는 세계죠.


김준산·김형섭 『철학 듣는 밤』, 「미하일 바흐찐」 중...




5.19세기에는 설탕을 더욱 널리 사용했습니다. 어린이와 여성을 위한 시럽 종류가 늘어났고, 다양한 향신료를 섞은 세련된 설탕, 진귀한 과일을 이용한 설탕 등도 등장했습니다. 1845년에는 프랑스인 한 사람 당 연간 3.6 킬로그램이었던 설탕 소비량이 1858년에는 4.3 킬로그램, 1861년에는 6.4 킬로그램, 1866년에는 7.1 킬로그램, 1871년에는 7.8 킬로그램, 더욱이 파리 거주자의 경우에는 1870년에 무려 10 킬로그램 이상이 되었습니다.


이케가미 슌이치 『과자로 맛보는 와삭바삭 프랑스 역사』, 제3장 중...




6.다시 황건으로 눈을 돌려보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84년 중에 그 주력군은 대타격을 입었지만, 188년이 되자 다시 그 잔당 내지 황건이란 이름을 내건 자들의 활동이 각지에서 활발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우세했던 것은 곽태가 이끈 산서성의 백파군과 서주·청주의 황건이었다. 백파군은 무리 10만을 칭하며 동탁의 군대와 싸워 이기기도 했는데(190년), 동탁이 죽은 후에는(192년) 백파군의 장수 양봉이란 자가 원래 동탁의 부하였던 이각의 부장으로 역사상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後漢書』, 董卓傳)


임대희·이주현·이윤화 외 옮김 『세미나 위진남북조史』, 大淵忍爾, 이주현 옮김 「황건(黃巾)의 난과 오두미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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