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새 글

요 근래의 잡상

cAAke명 읽음4개 덧글
그냥 페북에 끄적인거라 반말입니다.

깨시민들에게나 극우들에게나 여성, 장애인 등은 그저 처분할 '쓰레기'다. 깨시민들의 복지란 이들의 입을 닥치게 하는 당근이다. 비스마르크의 복지 개념에서 단 한 발자국도 못나간 그딴 생각을 가지고 정의의 사도 흉내를 내고있다.

게다가 극우들이 깨시민들에게 쓰던 공격을 깨시민들은 잘 배워서 상대적 약자들에게 써먹는다. 불순 외부세력, 분열, 불법, 비합법 등등의 어휘를 마구 써먹는가 하면, "장애인이 벼슬이냐" "김치녀 보슬아치" "개념있는 청년인줄 알았더니 ~~" 등의 되먹잖은 소리들을 잘만 쓴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경멸하는 새누리 지지자들을 닮아가고 문재인주의자, 이재명주의자가 된다. 한국 정치의 수준이기도 할 것이다.(물상화된 정치인이라는 페티시즘)

일전에 정희진 선생이 한겨레 지면을 통해 조선일보나 한겨레나 (젠더 지형 상에서) 본질은 같다는 비판을 한 적이 있다. 이는 소수자, 약자들에 대한 깨시민들과 극우들의 태도에도 유효한 비판일 것이다. "근본없는 저잣거리 아녀자"란 말에 열광하고 레디컬한 페미니즘을 나치와 동일시하는 자들이 노무현 영정앞에서 세월호 리본 달고 질질짜는 꼴을 보면 정말 맛탱이가 간 작자들 같다. 이건 그냥 정신나간 광신도 집단이다.

이런 빻음은 정치공학 주판놀음이나 예언 놀음을 가지고 "진보"라 착각하는 풍토에도 뿌리가 닿아있다. 근데 그 짓거리는 종편 막말 프로그램들에서도 수없이 해온 짓들 아닌가? 민언련의 고발들을 보고 열받아하면서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 문제에선 태도가 종편같아지는 것은 왜일까?

브로델의 자본주의 분석에서 눈 여겨 볼 부분이 있다. 자본주의의 독점적 성격은 바로 위기가 닥쳤을때 피해를 보는 다수와는 다르게 자신이 가진 재력 등으로 버티고, 피해를 보더라도 덜 피해보는 소수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특권적 위치다. 이는 상대적 약자, 소수자들이 처한 상황의 가혹성, 그리고 이를 이해못하는 자들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거동 자체가 힘든 장애인의 신체와 가정환경,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틈에서의 여성들은 그 반대편의 비장애인, 남성들이 별 피해없이 넘어가는 (인지하지 못하는 특권적) 상황 속에서도 피해를 입는다. 청년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공감 못하는 꼰대들만 꼰대가 아니다.

마르쿠제의 생각은 오늘 이 시간도 유효하다. 저항자들의 저항을 봐야지 그 폭력성에 집착하는 합리성은 1차원적 인간, 1차원적 사회의 도구적 이성이다. 룩셈부르크의 생각도 유효하다. 현재의 합법이 탄생한 곳은 바로 불법과 투쟁이었다. 이승만이 서울 수복 뒤에 청와대에서 키우던 자기 강아지 '해피'처럼 도망치지 않은 자들은 다 부역자라고 인식하던 때에, 그래서 학살을 자행하던 때에 인권이란 불법이었음을 깨시민들은 완전히 잊었다. 이건 정신적 자살이다.
http://ilwar.com/free/251511
공감합니다.
생각과 결정을 전부 외주줬으니(...) 그냥 믿고 따르기만 하면 길이 열린다는 착각을 오지게도 하고 있는 것 같고. 이대로라면 민무늬뇌기 시대에서 벗어나기는 요원할 뿐이지요.
최근의 샤머니즘 정치에 대한 분노의 이면은 또다른 샤머니즘이란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을듯합니다.
사실 시민이라거나 주권자란 말이 아까울정도의 인간들이 극우들을 고기방패삼아 비교우위를 누린다는 생각밖에 안들어요.
그래도 여기서 살거나 죽을 수 밖에 없으니 살아있는 동안은 그런 사람들과 섞여 살 수 밖에 없닭. 점진적으로 고립되어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각오를 다져가면서 말이닭. 반정부투쟁이건 여성운동이건, 옆에 서 있는 사람들은 한 가지 문제로 함께하는 사람들일 뿐 절대로 고매한 인격의 올바른 사람이 아니라 생각한닭. 다만 그래도 여전히 그런 사람들중에도 빛이 나는, 배울것이 드러나 보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에서 약간의 희망이 생겨나곤 한닭. 

본문의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농은 그때부터 나농 스스로의 빻음을 되돌아봤던 것 같닭. 어쩌면 귀농도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 라는 싯귀에 이제 닿기 시작한 건 아닐까 싶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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