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새 글

자와군의 캡쳐프로젝트 57회

siAxk명 읽음2개 덧글

1.“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편찬 『성경』, 「탈출기」제20장 제17절

(상당히 빻은 표현이 많은 구절이지만, 구약에 빌붙어서 신도들의 재산을 탐하는 더러운 종교인들에게 분명히 유효한 구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골라봤습니다)




2.코언같은 시장 옹호자들은, 미국에서 문화생활이 양적으로 팽창했다고 지적하며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의 지지자들 가운데 한 명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문화의 대호황”이라고 적절하게 부를 만한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 미술, 음악, 문학, 비디오, 기타 창조적 표현수단이 엄청나게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부의 팽창과 관련된 이런 문화 소비의 확대는 현실 문화가 번영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 …… 이렇게 소비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오락에 대한 대중의 열망과 사상 및 예술의 발전에 대한 무관심을 혼동하게 된다. 한나 아렌트가 1960년대에 특별히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가진 것은 대중문화가 아니라 ‘세계의 문화적 대상물을 먹고 사는 대중 오락’이다.


프랭크 퓨레디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제4장 중...




3.후폐제 유숙에 대해서 《송서》<본기>에는 그의 잔학성과 상궤를 벗어난 악행을 기록하고 있으나 얼마만큼의 진실성이 있는지 믿기 어려우며, 또 그는 겨우 12~13세의 소년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송서》본기의 기사 내용은 소도성의 찬탈을 정당화하려는 조작된 이야기일 것이다. 계양왕 휴범과 건평왕 경소의 거병을 소도성이 지휘하는 대군(금군)이 평정하여 소도성의 권세는 날로 커져 문·무 관료들 다수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도성 일당은 광릉을 거점으로 하여 폐립의 모의를 꾀하고, 직합장군 왕경칙은 건강에 재임하면서 소도성 일파와 연결하고 또 제의 좌우인 양옥부, 양만년, 진봉백 등 25명과 결합해서 7월 7일 저녁에 후폐제를 암살하였다.


이공범 『위진남북조사』, 제3장 중...




4.더 간단히 말하자면, 루터의 정치적 권위주의는 그의 종교적 사유에 내재한 반정치적, 반권위주의적 경향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정치사상의 모양새는 상당 부분 신학적 교리의 재구축이라는 기본적인 목적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주목했듯이, 이런 재구축의 노력에 수반되었던 비판적 파괴의 결과 가운데 하나는 종교적인 범주들을 탈정치화하는 것이었다. …… 정치사상의 자율성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은 정치사상이 더욱더 진정으로 ‘정치적’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루터의 정치사상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은 정치에 대한 지나친 무관심의 산물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경멸적인 관심과 열정적인 관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면서 때로는 양자를 결합하기도 하는 루터의 정치적 태도가 지닌 ‘분열적인’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셸던 월린 『정치와 비전 : 서구 정치사상에서의 지속과 혁신』, 제1권 제5장 중...




5.일본은 출판에 관련된 모든 일을 ‘출판경찰’이라는 이름의 국가권력 아래에 두고 있었다. 당시 언론관련법은 이 출판경찰과 관련된 ‘출판경찰법’으로 분류되었는데, 특이한 것은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정기간행물을 일반출판물과 다르게 취급하는 법체계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즉, 단행본과 같은 일반출판물은 ‘보통출판물’이라는 지침으로 ‘출판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였고, 정기적으로 간행되는 신문이나 잡지와 같은 출판물은 ‘신문지법’의 적용대상이 되었다. …… 다만, 식민지 조선에서는 조선인 발행인지 일본인 발행인지에 따라서도 다른 법이 적용되어 일본인은 ‘신문지규칙’과 ‘출판규칙’을, 조선인은 ‘신문지법’과 ‘출판법’을 따르도록 했다. …… 일례를 들자면 일본 국내의 ‘신문지법’은 1887년에 이미 ‘허가주의’를 폐지하고 ‘신고주의’를 도입했지만 식민지 조선의 ‘식민지법’은 통치기간 내내 ‘허가주의’를 유지했고, 조선내의 일본인에게 적용된 ‘신문지규칙’은 ‘신고주의’를 따르기는 했으나 ‘인가’를 받도록 했다는 점에서 일본 국내의 ‘신문지법’보다는 통제의 강도가 높았다.


이민주 「일본어 잡지기사에 나타난 일제하 언론정책과 언론상황」 중...




6.차티스트 운동은 헌법이라는 채널을 이용하여 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얻어내려던 순수히 정치적 성격을 띤 노력이었다. 그것이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했던 중간 계급이 자기들의 투표권을 확보하기 위해 벌였던 의회 개혁 운동의 노선과 동일한 것이었다. 이들이 현장에 내건 6개조 요구 사항은 민중의 실질적인 참정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국 중간 계급이 장악한 개혁 의회는 그러한 투표권의 확장을 30년 이상 비타협적으로 완고하게 거부했고, 차티스트 운동이 내건 헌장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가 확연히 드러나게 되자 무력도 사용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제2부 제14장 중...


http://ilwar.com/free/248847
아내를 소유물 범주에 넣은 골통 분자단위로 빻인 구절이지만, 이웃의 남편은 탐해도 된다는 것인가... 여성 혹은 게이에겐 유리한 유권해석이 가능하닭.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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