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새 글

[펌]작년에 "오유에 올라온 글"의 피드백

tctCe명 읽음9개 덧글



수정하고 싶은 부분

1. 이 글을 쓸 때 나는 메갈리아와 여시라는 커뮤니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그 커뮤니티의 게시물은 '오늘의 유머' 내에서만 접했습니다. 사실 자작이 없으면 혐오를 못하는 판국에... 그 게시물들이 조작되었다는 의심을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불찰이었던 것 같아요. 여시같은 경우는 가입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 가입할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학생 중 한명이 제 글에 달린 댓글을 복사해서 보내주었어요. 그 댓글 중 몇개가 '사실 여시에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적이 없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내가 실제로 여성시대 카페에 가입해본 적도 없으면서,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조작된 증거를 믿고 글을 쓴 것이 경솔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조작된 근거로 보기에도 오유는 너무나 이상했기에.....) 


메갈리아에 대해선 그 전까지 접해본 적이 없으나, 오늘의 유머에서 내 글이 메갈리아라고 ㅋㅋㅋㅋㅋ몰아가는 바람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저 글에 저의 의견은 거의 없곸ㅋㅋㅋㅋㅋㅋㅋㅋ기본적 인문학적 개념들을 설명한건데ㅋㅋㅋㅋㅋ기본적 인문학 개념만 이야기해도 메갈리아가 되는 현실ㅋㅋㅋㅋㅋㅋ 언어에 대한 이야기는 대표적 언어학이야기곸ㅋㅋㅋㅋㅋㅋ 대부분 1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의견들인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메갈리아인줄ㅋㅋㅋㅋ브란튼베르크 메갈리아에서 온줄ㅋㅋㅋㅋㅋㅋㅋ 구조주의자들 다들 메갈리아출신ㅋㅋㅋㅋㅋㅋ) 글을 올린 후 대체 거기가 어디야? 하고 들어가보았습니다.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 아쉬운 부분도 있었던 다양한 페미니즘 운동의 한 갈래라고 생각하고 있고, 제가 추구하는 방향의 운동과는 다르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내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외모 비하와 성소수자 비하까지 간 단계에서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 같습니다.


2. 낙태에 대한 생각은 글을 쓴 후 조금 바뀌었습니다. 낙태율을 줄여야하고, 계획에 없던 아이를 가진 여성이 아이를 지우는 일 보다는 낳아서 기를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사회 제도를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선택은 오로지 여성이 독립적으로 스스로의 권리를 행사함으로 비롯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제도적으로 낙태를 불법화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이 글에서 다뤄지는 개념들은 대부분, 1세대-(넓게 잡아 2세대) 페미니즘까지의 개념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이 뒤에 3세대 페미니즘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그 글은 잘 돌아다니지 않아서 제가 다시 만날 기회가 없어졌네요. (...) 개념과 이론은 계속 발전하지만, 현실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일단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바로 3세대 페미니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겠지요. 수업을 할 때도 보통 시몬느 드 보부아르- 이리가레이- 주디스 버틀러 순으로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니까요. 한국은 1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바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있어요. 


쉽게 말해서 1세대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에 의한 여성 억압을 다루고 있고, 3세대 페미니즘은 젠더롤 그 자체가 개인을 어떻게 억압하는 지와 얽히면서 수많은 성소수자 담론을 형성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한국에서 일어나는 여성 차별의 양상은 아직 1세대 페미니즘이 대항하는 편견들을 벗어나지 못했고, 사회에 난무하는 편견이 이미 젠더를 이분법하고 있기 때문에, 이분법화되어 열등한 쪽으로 잘못 분류된 여성이라는 성의 위치를 회복하는 일은 필수적예요. (당연히 그와 동시에 젠더 고정관념을 깨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요.)


각각의 페미니즘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며, 사회를 비추는 거울 처럼 각각의 사회적 분위기에 맞추어서 다양하게 융합되고 섞일 수 있어요. 이 글에서 언급되는 1세대 페미니즘적 사고 말고도, 더 다양하고 유연한 젠더 가치관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요. 그리고 어쩌다가 있을 '1세대 페미니즘은 이제 끝났는데 멍청한 한국에서만 회자되고 있다' 라는 멍청한 반박은 들을 일이 없기를 바라요. 1세대 페미니즘만이 페미니즘의 전부는 아니고, 그것이 가진 한계도 명확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선 반드시 필요한 가치관이니까요. 그리고 1세대 페미니즘 끝나지 않았어요 ㅋㅋㅋ 3세대 페미니즘으로 발전해서 가지가 뻗어나갔을 뿐이고, 학계에선 여전히 다양한 페미니즘 이론이 현존하며 공존하고 있어요. ㅋㅋㅋ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지는 개념이 아니고, 스펙트럼처럼 다양하게 존재해요.


가부장제는 이 젠더를 1. 이분화 시키고 (남/여로) 2. 그것의 서열을 나누고 한쪽을 억압하지요. (한쪽을 타자화시키면, 당연히 타자화시키는 그들도 타자화됩니다.) 이때, 1번과 2번은 동시에 반박되어야해요. 이 글에서 주로 반박되고 있는 지점은 2번이구요. 

이분화된 젠더 격차가 거의 소멸되어가는 국가에선 (여전히 그래도 남아있지만) 1번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히 진행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단순히 남성-여성이라는 두개의 단순한 성의 평등함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나라에서........... 3세대 페미니즘이 언급되는 순간은 주로 1세대 페미니즘의 불필요함을 역설할 때 뿐이더라구요. ㅋㅋㅋㅋ 이런 무지함은 너무 슬퍼라ㅋㅋㅋㅋㅋㅋ 




*'타자화'와 '대상화' 무슨 뜻인지 철학적으로 이해 못하시는 분은 개념을 먼저 이해해보도록 합시다! 인터넷으로 단어 정의 찾아서 삼십초 읽는다고 쉽게 이해되는 개념이 아니라서 정성이 필요하지만....이해하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예용! 타고나길 인권감수성이 민감하지 않더라도, 공부를 하면 지성의 힘으로 채워나갈 수 있을 거예요!... 페미니즘은 마이너리티에 대한 학문이고, 학문에 대해서 논할땐 소통에 대한 기본 개념은 갖추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요. 곱셈과 나눗셈에 대해서 모르면서 방정식을 풀 수는 없으니까요... '타자화' '대상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개념들이 없으시면 논의는 빙빙 돌게 될 거예요. 

 

*'집단의 분위기로 개인을 일반화' 하는 것과 '개인에게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구조'에 대해 말하는 것 두개 구분 안 가시는 분은 구조주의 공부해봅시다! 전자를 막기 위해서도 후자에 대해 말하는 것은 필수적이여요. 개인을 개인이 속한 집단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게 주로 일어나며, 사회적 소수자집단이 어떻게 형성되는 지 알기 위해선 사회적 구조가 어떻게 기울어져있는 지 알아야하니까요. 그 두개가 이해가 가지 않아 페미니즘이 남자를 일반화 한다고 하면 ... 슬프고 무력하다...





*오유에 쓰였던 글로, 반대폭탄을 받고 이 분은 오유를 그만두셨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개괄적인 정리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글입니다. 긴글이 지루할 수 있겠지만 아직 못읽어보신 분들이 끝까지 읽어보셨으면 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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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턴 작녁에 오유에 올라온 글이닭.)



로그인하고 오유에 들어온 적이 많이 없고 주로 조용히 눈팅만 하다가 터져서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쓰네요. 전 혐오와 차별에 아주 민감한 현재 해외 거주중인 이십대 여자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여성차별은 심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명확히 말해서 전 세계, 이 전 지구에서 여성 차별은 명백히 존재합니다. 여성과 남성의 권리를 동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린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며 (심지어 관점에 따라선 그 나라들에서조차 여전히 여성 차별이 남아있지요.) 대부분의 나라들에선 여전히 여성 차별이 존재하고 있지요. 


한국은 여성의 권리가 땅에 떨어져 처참히 짓밟힌 인도나 일부 이슬람국가들보단 훨씬 더 훌륭한 나라지만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권리'를 지닌다는 관념에서 보았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자는 명백한 사회적 약자입니다. 저는 이 글을 계몽을 목적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다만 너무 화나고 속상해서 속풀이를 할겸 쓰는 게 맞다고 볼 수 있겠지요.


당신이 여자라면 더욱, 여자가 아니라도 어머니와 애인을 둔 사람으로서, 아니 이 지구상의 구성원이라면 더욱 차별 받는 약자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페미니즘은 역사가 오래된 학문은 아니지만 ('여자'라는 미천한 종족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접근해야한다는 생각 자체가 최근의 생각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담론들을 만들어내고 있답니다. 그리고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남성우월주의자들이 하는 대부분의 말은 이미 관련 서적에 다 비판되어 있습니다. 관심이 있거나 남성우월주의 사상을 옹호하고 싶으신 분은, 제발 먼저 책을 읽어주세요.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주세요. 한국은 이미 여성차별의 정서가 만연한 곳이기 때문에, 일부러 공부하지 않으면 차별의 존재조차도 눈치채지 못합니다.


1. 

차별이 만연한 곳일 수록 차별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재미있는 통계 결과를 본 적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남녀평등 지수가 높은 나라일 수록, "우리 사회에 남녀 차별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네."라고 응답하는 경우가 더 높았고, 남녀평등 지수가 낮은 나라일 수록, "우리 사회에 남녀 차별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충분히 평등하다" 라고 응답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있어요.


한 사회에서 어떤 집단이 차별받고 있는지를 개인이 뚜렷한 이성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차별은 거대한 사회적 현상이고, 그 사회에서 자라나는 개인은 이미 사회의 규칙을 내제화합니다. 차별이 만연한 나라에서 자란 개인은 이미 차별적 감수성을 보편적 진리로 받아드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평등하고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은 폭력에 예민합니다.


하지만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은 폭력에 둔감한 경우가 많고, 부당한 폭력이 일어나는 일을 보더라도 그것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 문화, 정치, 그 모든 곳에서 전 지구는 여성차별적입니다. 여성 정치인의 숫자만 보아도 알 수 있지요. 하지만 오유는 한국인들이 (...) 쓰는 포털 사이트니, 오유에서는 한국의 여성 차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조금만 예민하게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 그것들은 모두 이 사회가 얼마나 차별적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이 익숙해진 사회에선 그것이 차별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너무나도 차별이 당연한 사회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것 조차 모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상황을 바꿔서 예를 달리한다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예를 든다면 사람들은 단박에 그것이 차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끊임없이 살해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로 '전라도'사람들이 '경상도' 사람들을 살해하는 경우는 통계적으로 낮다면, 우리는 그것이 차별의 지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는 살인 사건의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남성에 의한 남성 살해, 여성에 의한 여성살해, 여성에 의한 남성살해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높은 순위지이지요. 세계적으로,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는 하나의 현상입니다. 이것을 차별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고, 차별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 이래로, 너무나도 오랜시간,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가 이루어져왔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오래 이루어져서, 그것이 당연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이 차별인지 모르는 것이죠. 당연히 저 수치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참 이상하지 않나요? 아주 오랜기간동안, 무시할 수 없는 높은 확률로,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가 이루어져왔는데, 어째서 아무도 저것을 차별의 지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강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성에 의한 여성의 강간이 압도적이지요. 하지만 사실, 여성도 남성을 강간할 수 있습니다. 힘이 약하고 신체적으로 조금 더 어려울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남성에 의한 여성 강간이, 여성이 남성을 강간하는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높지요. 이것 역시 차별의 표시입니다. 


(만약 여성우월주의 사회였다면, 여성에 의한 남성 강간이 더 높았을 것입니다. 이 말이 언뜻 이해되지 않으신다고 바로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치부하시지 말고, 관련 서적을 한번이라도 읽어보시면서 차분히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생각은 하루 아침에 바뀌는것이 아니고 뿌리깊은 고정관념은 일순간에 무너질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은 여기에 대해서 남성과 여성은 신체적 능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폭력의 가해자는 남성이 되고 피해자는 여성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도 안되는 대답을 했습니다. 신체적 차이는 폭력의 가해를 정당화할 수 없으며 그것이 정당화되는 시점은 이미 차별이 만연한 후입니다. 문명국은 신체적 차이를 폭력이란 형태로 드러내는 것을 금지하며, 그것이 금지되었을 때 비로소 남녀 평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신체적 차이가 정말로 뚜렷이 드러나는 장애인-비장애인의 경우,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폭행하였을 경우 명백히 차별이라는 인식을 한다는 점입니다.)


'남녀차별'의 경우, 사람들이 인식하는 차별 감수성 중에 가장 낮은 경우에 해당합니다. 

즉, 인종차별이나 장애인차별, 직업에 의한 차별은 차별이 발생한 순간 '아, 이것은 차별이다'라고 인식하지만 남녀차별 같은 경우는 차별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차별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적다는 말입니다. 물론, 아까 말했듯이 남녀가 평등에 가까운 나라일 수록 차별을 차별로 인식하는 나라도 많아집니다.


대부분의 '통계'와 '현실'이 한국에서 (전 지구에서) 여성차별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단 이것을 인정해야합니다.


'한국 이만하면 남녀 평등하지 않나?' 라던가 '요즘 여자가 무슨 차별을 받는다고 해?' 라고 말하시는 분들은 실제로 한국이 남녀가 평등해서 그렇다기 보단, 여성에 대한 차별이 너무나 당연해서 그것을 차별로 인식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는 너무나도 명확합니다. 앞의 내가 말한 명확한 근거를 우리는 보지 못하고, 기껏해야 더치페이나 가사노동 분담같은 작은 일들로 남녀 평등 지수를 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사회적 약자인지를 나타내주는 가장 결정적인 지표는 그런 미시적인 지표들(도 물론 중요하지만)보다도 거대한 사회 구조를 보아야 합니다.


할례는 명백히 여성 차별의 상징이지만, 할례를 행하는 나라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할례는 여성차별의 근거가 아니다' 라는 주장이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히잡도 마찬가지입니다. 며칠전 초등학교 성교육 지침을 보셨나요? 상식이 있으신 분이라면 충격 받으셨을 거예요. 굉장히 성차별적인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었거든요. 한국은 교육에서부터, 제도적으로 남녀 차별을 학습시키는 나라입니다.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는 경우와 여성이 남성을 살해하는 경우가 동등하거나 비슷해질 때 (예..가 무시무시하군요)
여성 정치인의 수와 남성 정치인의 수가 비슷해질 때, 명목상 호주제가 폐지된 것은 다행이나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도 '아이가 부모님 둘 중 아무의 성을 따르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때'


그때가 비로소 남녀가 평등한 시기입니다.


너무나도 이상적인 이야기지요? 원래 평등은 이상적인 것입니다. 역사 이래로 있어왔던 차별중 그 이상에 도달한 차별은 많이 없습니다. 여전히 인종차별, 장애인차별, 연령차별등이 남아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차별이 있다고 이야기해야합니다. 그래야지 멈추지 않고 변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는 명백한 약자입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다음 담론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2. 

차별이 만연한 곳일 수록, 강자에 대한 약자의 폭력에 더욱 예민합니다. 아직 인종차별이 남아있을 때, 음... 인종차별은 지금도 남아있군요.


그렇다면 아직 노예제도가 남아있을 때로 정정합시다. 아직 노예제도가 남아있을 때, 백인 주인이 노예인 흑인을 때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죠. 그런 일은 아주 만연했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만연했지만 아무도 그것이 폭력이라고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느날, 흑인 노예가 백인 주인을 때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모두가 명백히 그것이 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지합니다. 그리고 폭력을 저지른 흑인을 처벌해야한다고 소리치죠. '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흑인은 물론 명백히 폭력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처벌하는 사람들은 단지 폭력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치루는 것이라 말하겠지요.


'폭력'은 잘못입니다.


저는 폭력을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자든 약자든 폭력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맞겠지요. (이 문장 자체에도 어폐가 있는 것이, 사실 폭력이 없다면 강자와 약자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다 일상적이고 많은' 폭력을 저지른 쪽이 강자가 됩니다. 그런데 폭력을 일상적으로 많이 저지르다 보면 그것이 익숙해지지요. 그래서 만연한 폭력은 폭력이 아니게 됩니다. 다만 그 반대의 경우는 너무나 눈에 띄게 되지요.

나는 고결한 피해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같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잘못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너무나도 형편성에 어긋난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180센티 이상이면 남자도 아니라는 (잘못된) 발언을 했다가 사회에서 매장당하고 오래도록 까인 한 일반인 여자를 기억합니다.


할인카드를 꺼내는 것이 좀 별로였다는 (잘못된) 발언을 했다가 (사과글을 올렸음에도) 몇년동안 제대로된 방송활동을 못한 한 여자 연예인을 기억합니다. 그 당시의 오유 분위기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그땐 오유를 잘 몰랐습니다) 다른 포털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일관적이고 끔찍한 욕설로 그들을 처단했는지도 기억납니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여성 혐오 발언을 하고, 사과를 하고, 아직도 여전히 방송활동을 잘하고 있는 한 연예인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앞의 여성들이 했던 발언이 그가 했던 발언에 비교하자면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그가 받았던 지탄이 앞의 두 여성이 받았던 지탄보다 더 유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모두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메르스 갤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텐데 저는 메르스 갤러리를 옹호하지도 않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냥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몇년동안 디시인사이드에 메르스갤에서 필적하는 여성혐오발언이 들끓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만 그것이 너무나 일상적이고,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아무도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죠. 


갤러리 이름을 공개하진 않겠지만, 지금도 너무나 끔찍한 여성 혐오 발언이 난무하는 갤러리가 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 한번 들어가보았는데, 한국 여자와 다른 나라 여자들의 성행위에 대한 비교들이 상세히 올라와있고, 각국의 '여자들이 죽여주는' 유흥 도시에 대한 리뷰가 적혀있네요. 왜 이 게시판에 대해선 아무도 분노하지 않나요? (여기서의 분노는 사회적 현상을 말합니다. 개인적인 분노 말고요.) 


이런 일은 몇년동안,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성에 대한 이정도 비난은 역사 이래로 몇천년동안 지속되어왔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이것을 지적하지 않았죠. 아니, 정정합니다. 몇명의 페미니스트들이 계속 지적했지만 사회는 듣지 않았죠.

그런데 똑같은 나쁜 일이, 짧은 기간동안, 메르스 갤러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비판받을만큼 나쁜 말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죠.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조롱했지요. 메르스갤에 대한 분노가 사회적 현상이 되었고, 메르스갤은 퇴출당했습니다. 


메르스갤이 퇴출 당한 이유는 '혐오발언' 그 자체 때문이 아닙니다. '여성이 남성을 혐오발언' 했기 때문에 퇴출된 것입니다.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는' 무수한 갤러리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아직도 디시에 있습니다. 그리고 오유에서도 역시, 메르스갤만을 조롱합니다. 왜 여성을 혐오하는 다른 갤러리는 조롱하지 않는 것이죠? (*내가 이 이야기를 하자, 누군가는 일베를 조롱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베는 성별집단을 초월하는 존재입니다. 메르스갤은 명백히 성별집단으로 존재하구요. 


즉, 여성 혐오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이미 여성혐오 외에도 여러가지 등신짓으로 등신 인증된' 일베 안의 여성혐오 밖에 없습니다. 일베 밖의 혐오발언일 경우 - 아무 문제가 없지요. 하지만 남성 혐오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메르스갤 밖의 남성 혐오든 메르스갤 안의 남성 혐오든 똑같이 조롱 받습니다. 실제로 일베의 가장 심각한 이유는 여성혐오이지만, 담론에서는 일베의 정치성향을 전면적으로 내세울 뿐 여성 혐오는 담론에서 가장 뒤쳐저 있습니다.)


디시인사이드에서, 남자 이용자가 여자의 '질의 수축력'을 평가하고 등급을 매기고 조롱하는 글은 여전히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잘못된 일입니다. 하지만 용인되지요.)


여자가 남성의 '성기 사이즈'에 등급을 매기고 조롱하고 평가하는 글을 볼 수 있었던 곳은 짧은 시기, 메르스갤 밖에 없었습니다. (잘못된 일입니다. 잘못된 일이라서 비난받고 쫓겨났지요. 오유에서도 계속 조롱 받고 있지요.)


"디시의 여성 차별엔 별 생각 없었지만 메르스갤의 남성혐오엔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라면 여성 차별주의자가 맞습니다.혹자는 '디시는 남초 사이트이기 때문에 그렇고, 여초 사이트는 그렇지 않다' 라는 말을 할 것입니다.

전 여초 사이트 중에서 남성의 성기를 평가하고, 등급을 매기고, 조롱하다가 일베에 가깝게 비난 받는 사이트를 알고 있습니다. 여시지요. 잘못된 일이었고, 비판은 정당합니다.

다만 같은 비판이 왜 디시에 대해선 일어나지 않는 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말하는 비판은 '현상'으로 분류될 수 있는 '붐'을 뜻합니다.)


3. 

언어는 차별을 상징하는 가장 뚜렷한 지표입니다. 인문학적으로 들어가서, 언어는 차별을 상징하는 가장 뚜렷한 지표입니다. 언어가 어떤식으로 만들어지고 사용되는지는 그 집단이 가지고 있는 의식을 대변합니다. 의식이 언어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언어가 나중엔 의식을 지배합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대중은 이성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사리분별이 뚜렷하지도 않기 때문에 집단이 만들어내는 언어는 약자에게 매우 차별적이고 폭력적입니다. 사회적 약자의 경우, 언어로 집단화되고 꼬릿말이 붙습니다. 강자일 경우, 집단화의 함정에서 자유롭고 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역사에서 여성은 불완전한 인간, 남성에게 딸린 부속품 정도로 취급당했습니다. 신화에서부터 그것이 드러나죠. 갈비뼈에서부터 만들어진 사람이거든요. 남자만이 온전한 인류였고, 여자는 그저 딸린 존재였습니다. 멀지 않은 과거에 유럽 지식인들의 토론 주제 중 '여성도 인간인가?'가 있었답니다. 말 다했지요.


man은 남성과 인간을 동시에 뜻합니다. woman은 여성만을 뜻하고요. 인간을 이야기할 때는 남성이 포함되지만, 여성을 부를 때는 전 인간이 아닌 오로지 여성만을 지칭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란 한국어는 중립적인 좋은 단어지요. 다만 한국엔 '청년'이라던가 '청소년'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둘 중 어느 단어가 먼저, 무슨 뜻으로 만들어졌을까요? 우린 쉽게 추측할 수 있지요.


'놈'이 있고 '년'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둘 다 비속어지요. 하지만 비속의 강도는 다르다는 것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놈은 '사내아이를 귀엽게 부르는 말'로도 쓰이거든요. '계집'에 대응하는 단어는 무엇이 있을까요? 계집은 미묘한 뉘앙스입니다. 여자를 말하면서 동시에 낮잡아보는 단어거든요. 대응하는 단어? 사내? 사내는 여인에 대응하는 단어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문화적으로 '남자'를 뜻하는 단어보다 '여자'를 뜻하는 단어가 더 천하고 부정적입니다.


우리는 사람이고, 사람 중에서 몇명은 진상짓도 하고, 나쁜 짓도 합니다. 하지만 그 진상짓을 했을 때, 진상짓을 한 사람이 강자에 속하는 경우, 그 사람은 한명의 진상이 됩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그 사람은 약자를 대표해서 집단화 됩니다.


(*지금부터 내가 들 예는, '사회적으로 공식적인 유행어'로 지정된 단어들입니다. 예를 들어 개같은 성격을 가진 고양이라는 뜻의 '개냥이'같은 경우는 이미 공식화된 단어이죠.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서 고양이같은 성격을 가진 개라는 의미의 '냥아지' 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사회적으로 뜨지 않은 단어지요. ~녀에 대응하는 ~남은 등장했지만, 그것이 1. 단지~녀에 대응하는 의미로 뒤늦게 붙여졌고, 2. 사회적으로 ~녀보다 약한 의미를 띌 경우엔 배제했습니다. 즉, 미러링에 의한 단어는 배제했습니다. 어떤 혐오단어에서도 미러링은 나올 수 밖에 없으며, 미러링 단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차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펴기엔 많이 빈약하니까요. 최초의 발생, 즉 사회문화가 만들어낸 편견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발생만 다뤘습니다.)


된장녀라는 단어를 볼까요? 사치 하는 사람은 남녀 불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독 여자에 대해서만 집단화된 꼬리표가 붙었지요. (된장남이란 단어도 뒤늦게 나왔지만, 억지를 부리지 않으면 아실 겁니다. 된장'녀' 논란의 '녀'는 명백히 여성을 타겟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김치녀라는 단어를 볼까요? 한국에 살고 있는 여자를 뜻하는 단어지요. 한국엔 남녀모두 사는데, 왜 유독 여자에 대해서만 저런 단어가 생겨났을까요? (김치남이란 단어 역시, 미러링 전에는 없었지요.)


김여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운전을 나쁘게 하는 사람들은 성별과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운전을 나쁘게 하는 사람을 김사장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김여사 논란이 되고 나서야, '그렇다면 너희도 김사장이라고 해!'라고 말했지만, 최초의 사상에서 남자를 집단화시키는 사고는 발동하지 않습니다.)


맘충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개념 부모가 꼭 성별에 영향을 받을까요? 어째서 부모쪽의 '여자'가 문제가 될때, 우리는 그것을 언어화 시키는 걸까요? (여자가 육아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확률적으로 그렇다면, 남자가 확률적으로 많은 직업 중 진상을 일컫는 ~~남이라는 단어는 왜 없나요?'


언어적으로, 집단화되어 비판받는 대상은 여성입니다. 만약 남성을 집단화하여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면, 많은 경우 앞의 단어를 미러링으로 쓰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도, 외갓집, 친갓집, 큰어머니, 도련님, 아가씨, 처제 이런 단어들은 남녀차별적인 기반에서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생길 무렵의 사회가 얼마나 차별적이었는지 알 수 있지요.


너무나도 이상한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시고도 있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의 대를 잇는 '아버지'에 속한 것이고, 다만 여자는 그 아이를 '기르는' 양육의 의무를 진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죠.

언어는 우리를 반추할 수 있는 거울입니다. 


4. 

대부분의 '역차별'은 '차별'에서 비롯된 효과일 뿐입니다. '역차별'이란 과잉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이 남녀차별이니까, 그 남녀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교정을 하는 동안, 너무나도 과하게 교정을 해서, 이젠 여성우월사회가 되어버렸다, 이 경우에 역차별이란 단어를 씁니다. 하지만 단언컨데 .... 지구상에서 그 역차별의 세상으로 진입한 나라는 한 나라도 없습니다. 하물며 아직까지 남녀차별이 만연한 한국에서 역차별이란 정말로 먼... 아주 먼 이야기지요.


여러분들이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부분 차별 그 자체를 잘못 이해한 데에서 비롯됩니다. 한 집단이 한 집단을 차별하는데에는 너무나 복잡한 사회적 매커니즘이 작용하기 때문에, 차별 그 자체를 이해하는 일이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집단을 억압하기 위해선 집단 내부의 억압이 필수적이며, 다른 집단을 차별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집단 내부의 구성원들 조차 차별하게 됩니다.


역차별의 근거로 드는 가장 큰 것 두가지가


1. 데이트 비용
2. 군입대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남성분들이 데이트비용을 더 많이 내는 (이 잘못된) 문화는 여성우월에서 비롯된 문화가 아닙니다. 이것은 뿌리깊은 남성우월에서 비롯된 *부작용*입니다. 데이트비용을 남성이 지불하는 문화는 가부장제와 맥을 같이 합니다.


여성의 노동력을 가사노동으로 국한시키고, 일을 할 수 없도록 억압하고, 여성을 하나의 물건으로 취급하는 문화와 맥을 함께 합니다. 아주 뿌리깊은 남성우월 사상이지요. 여성은 돈을 벌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서 남성에게 의존해야했습니다. 여성이 불완전한 존재로서 의존해야지 여성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지요.


여성은 역사상 '물건'과 같았고,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사기 위해서 '인간'인 남자가 돈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아주 잘못된 문화이지요. 만약 당신이 남녀평등을 위해 힘써준다면, 데이트비용을 남성에게만 부과하는 이런 문화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입니다.


데이트 비용 문제는 현실적으론 부당하게 차이나는 여성과 남성의 임금격차, 인식적으론 여성자체를 물건으로 보는 것과 맥을 함께 합니다. 남성만이 여성을 물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도 자신을 물건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지요. 내가 나 스스로를 파는 것이니, 비싼 값에 팔겠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문제와 인식적인 문제 (여자는 물건이 아니다)를 함께 해결해야지 나아질 수 있는 문제입니다.


두번째로 남성에게만 부과된 군입대의 책임인데요, 이것 역시 남성우월주의의 산물입니다. 남성우월주의의 부작용으로 현재의 남성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고 있지만.... 이것은 '역차별'이 아니라 '남성 우월주의의 부작용입니다.


역사적으로 병역의 의무는 '인간'에게 부과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죠. 그리스 시대에서 '시민'이 아니었던 노예와 여자와 외국인은 군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랜시간 여자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남성에게 딸린 부속품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군대에 갈 수 있는 '자격'이 없었던 것이지요. 


이 제도를 만든 것은 남성중심의 사회이며, 두말할 것 없이 남성들입니다. 여자들이 권력을 잡고 "우린 군대 가지 않을테니 너희만 가!"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 (그런데 역사상 지배계급은 늘 남성이었죠)이 권력을 잡고, 앞으로 군대는 남성만 간다. 라고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결국 누가 군대를 갈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 자체가 남성에게 있습니다. 그 와중에 권력을 가진 남성이 권력이 없는 남성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여자는 너무나도 미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결정과정에 조금의 입김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제도를 결정하는데 어떤 입김도 행사하지 못했는데, 그 힘없음으로 어쩌다보니 군대에 가지 않게 된 것입니다. '여자는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즉 '여자는 군대에 갈 수 없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역사적으로 그랬다는 이야기이고, 지금은 자원입대가 가능합니다. 남녀평등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시기에, 즉 베이스는 여전히 남성우월주의인 사회가 제도적으로 눈가리고 아웅을 하다보니 잘못 정착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결정은 모두 남성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사회에서 계층을 나누는 시각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지배/피지배계급으로 나눌 수도 있고, 제가 쓰고 있는 글 처럼 여성/남성으로 나눌 수도 있습니다. 복잡한 요소가 결합해서 하나의 시선만으로는 충분히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점은, 모든 남성은 지배계급이 아니지만 '모든 지배계급은 남성'이라는 점입니다. (생물학적 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생물학적 성이 여성인 우리의 지도자님은 충실히 남성지배계급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지요.) 


즉 현재 한국은 남성 지배계급, 피지배계급 남성, 그리고 피지배계급 여성으로 나누어져있습니다. 군입대는 지배계급 남성의 피지배계급 남성에 대한 억압입니다. 한국에서 여자는 너무나 미천한 계급이라서, 감히 누군가를 억압할 힘조차 없습니다. 

여성 차별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여성들이 가장 불안에 떠는 것은 살인. 강간. 남성에 비해 현저히 차이자는 저임금. 그 외의 각종 성폭력과 생존의 위협입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데이트비용과 군입대로 역차별을 논합니다.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역차별'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또 다른 예는, 이미 너무나도 차별이 만연해져서, 차별이 기준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아주 조금의 평등도 견디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음...이해를 돕기 위해 또 다시 노예제 예를 꺼내야할텐데요. 여기 악랄한 백인 주인 톰이 있습니다. 톰은 흑인 하인을 미친듯이 매질합니다. 우리 모두 톰이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리 흑인 하인이라도 매질을 저렇게 심하게 하다니.. 이건 좀 너무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 착하고 마음 따뜻한 백인주인 존이 있습니다. 존은 흑인 하인을 잘 대해줘요. 가끔씩 쿠키도 주고 흑인 하인에게 따뜻한 집과 잠자리도 제공해줍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아, 존은 정말로 착하구나!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 어느날 흑인이 이 존 씹새끼야!!! 넌 왜 주인이고 나는 왜 하인이야? 우리가 다른 점은 피부색 뿐이잖아? 당장 나를 노예에서 풀고 동등한 대접을 해! 이제 나는 너를 더 이상 주인님이라고 안 부를거야 !!! 너도 나에게 존댓말써!!!! 시발 아니다 같이 반말쓰자!!! 이럽니다.


그럼 갑자기 존은 화가 나게 되는 것이지요.


아니 니가 원래 노예인데 내가 이만큼 잘해줬잖아? 여기서 뭘 더 잘해주라는거야? 요즘 흑인들이 아주 살판 났구만! 

이라는 반응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흑인 노예는 원래 노예가 아니었죠. 원래 동등한 인간이었습니다. 그걸 노예로 만든 것 자체가 차별이었죠.


지금 현재 많은 여성 전문직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자도 대통령을 하는 시대인데 (그런데 아까 말헀듯이 지금의 여자 대통령님은 사실 가부장적인 남성질서를 옹호하고 있는 명예 남성에 가깝지만..) 이 정도면 남녀 평등하지 않느냐?" 라는 말도 들립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건국이래 계속 남성들이 대통령이었고 지금이 처음 여성 대통령입니다. (말했듯이 여성 대통령이지만 지극히 남성우월주의에 가까우신 분이십니다.) 이것은 평등이 아니라, 아주아주아주아주 불평등했던 것이, 아주아주 불평등한 것으로 조금 바뀐 거예요.


예전에 인상깊게 읽었던 여성 대법관의 인터뷰가 생각나네요.

누군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여성 대법관의 수가 전체의 몇%가 되어야지, 당신은 진정한 남녀 평등 시대가 왔다고 생각할건가요?"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100%요."
인터뷰이가 물었죠.
"그건 너무 심한것 아닌가요?"
"역사적으로 지금껏 계속 남자만 100%였고, 이제 겨우 내가 나타난건데요?"
속은 시원하나 물론 그녀의 말에 백프로 동의하진 않습니다.
5:5 정도의 비율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5:5도 아니예요. 

노예에게 쿠키를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닌 것은 아니예요. 다만 조금 더 상냥한 인종차별주의자일 뿐이지요.ㅠㅠ



5.

 '차별'은 거시적이고 집단적인 사회적 현상입니다. 당연히 미시적 개인은 차별에서 자유로울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강자에 의한 폭력은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형상으로 치부될 확률이 높으며 약자에 의한 폭력은 집단화되어 받아드려집니다. 아까했던 이야기입니다. 


제가 한 이야기가 집단화의 논란에서 자유롭길 바랍니다. 전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성을 가진 개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성보다 훨씬 가부장적인 여성 개인도 존재하며, 여성보다 훨씬 평등한 남성 개인도 존재할 것입니다.

'안 그런 사람도 있어요'라는 말은 이 경우 아무 힘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100%는 없기 때문에, 어디에나 안 그런 사람은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안 그런 사람이길 바랍니다. 


하지만 사회현상이란 것은, 거시적이고 집단적인, 다수의 생각을 말합니다. 그 다수의 생각이 법률, 교육, 제도에 영향을 미쳤을 때에 집단화시켜 강자의 집단과 약자의 집단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피해의 횟수와 가해의 횟수가 현저히 차이날 때, 우리는 그것을 사회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성 차별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뿌리깊은 사회현상입니다. 한국의 교육과 제도는 아주 차별적이며 여성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제도 이야기가 나오니 군 가산점논란이 생각나는군요.


개인적으로 군가산점논란은 아주 멍청하고 실패한 정책이고, 성별논란으로 불거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군가산점을 성별대결로 확대시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남녀차별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군입대 2년은 한 개인의 인생에 아주 큰 타격이며 불합리한 희생이고, 모병제를 하는 것이 가장 좋으며 그것이 불가피하다면 훌륭한 근무환경과 높은 임금을 책정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6.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저는 여시가 뭔지 모릅니다. 가입해본 적도 없어요. 지금 하고자하는 말은 여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시를 비난할 때 '낙태충'이라는 말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큰 충격이었어요. 한국의 법으로, 낙태에 대한 책임은 백프로 여성이 집니다. 생명을 책임지지 않은 것은 둘 다 똑같은데 말이예요.


저는 낙태를 옹호하지 않아요. 오히려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낙태에 대한, 더 나아가 여성과 출산에 대한 한국의 인식은 정말이지 참담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차별은 성과 재생산, 가정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커다란 부작용을 몰고올 수 있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피임약과 낙태의 발명은 여성의 성적 결정권을 증진시키는 일로 확대됩니다.

결정권을 박탈당한 사회에서, 여성은 임신을 하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었으므로, 성적 결정권을 행사하는데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막말로 섹스를 하다가 임신을 할 경우 여성이 지게 되는 희생이 더욱 크고 상대적으로 남성의 책임은 적었기 때문에, 여성이 성적 주체가 아니었을 때는 성교육이 그리 중요시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덜컥 임신할 확률이 높았지요. 아이러니하게도 남성의 섹스는 죄악이 아닌 반면 여성의 섹스는 죄악이었기 때문에, 임신은 죄악의 상징이 되고, 아이를 임신한 여자는 차가운 시선을 받게 됩니다. 특히 이 경우에 남성에게 양육의 의무를 지게 하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지요. 아이를 낳아도 미혼모라는 딱지는 평생 뗄 수 없게 되고, 덤으로 자신의 인생까지 걸게됩니다. 아이를 아무도 몰래 지운다면 이런 끔찍한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요. 당연히 낙태율이늘어납니다. 비록 아이를 낙태했다는 사실이 들통나면 물론 더욱 더 차가운 시선을 받게 될 테지만요.


하지만 피임약과 낙태로 인해 여성은 임신의 부담없이 성적 결정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여성이 성적 주체로 떠오르자, 피임방법과 성병에 대한 성교육이 중요시되기 시작합니다. 성교육이 중요시되자 피임율이 높아집니다. 당연히 어린나이에 덜컥 임신하게 되는 경우가 적어지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성에 대한 혐오가 덜한 세상은 미혼모를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한 제도적 뒷바침도 더욱 잘 되어 있습니다. 아이 아버지가 양육의 의무를 져야하는 법적 제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낙태율이 줄어듭니다.


어째서 '낙태'에 대한 비난은 여성에게 쏠려있을까요? 임신과 양육에 대한 책임은 왜 오로지 여성에게 부과되어있나요?

빈번한 낙태는 여성 인권이 저열한 사회의 하나의 문화적 현상입니다. 그런데 그 낙태가 또 다시 여성을 비난한 근거로 쓰이면서, 무한한 혐오의 순환 고리를 이루는 것입니다.


'아이의 출산과 양육은 절대적으로 여성의 책임이며 의무다.' 이것이 여성인권이 바닥인 나라에서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여성에 대한 지원이 없습니다. 아이는 여성의 책임이니까요. 여성이 아이를 양육하기 힘든 환경이 조성됩니다. 따라서 낙태율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출산은 여성의 책임이기 때문에, 낙태를 한 여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더욱 나빠집니다. 어차피 여자의 책임이므로 제도적 뒷바침은 마련하지 않은 채 낙태를 한 여성에 대한 더욱 강도높은 비난만을 합니다.


'아이의 출산과 양육은 남녀모두, 더 나아가 사회의 책임이며 의무다.' 이것이 여성인권이 남성과 동등한 나라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미혼모는 아이를 키우는 데에 많은 지원을 받습니다. 그녀가 미혼모가 된 것은 그녀혼자만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의 시선도 부드럽습니다. 낙태를 하게 된다면 그녀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라 엄마와 아빠와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결정이 되기 때문에, 여자를 비난하기 보단 사회적으로 낙태율을 줄일 방법을 찾습니다. 미혼모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며 아이를 낳는다고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지 않도록 사회제도적으로 도와줍니다. 자연스럽게 낙태율이 떨어집니다.


현상적으로 보았을 때, '낙태'와 '여성'을 집착에 가깝게 끈질기게 엮어서 말하는 나라일 수록 여성 차별이 심하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낙태율이 올라가는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낙태에 반대한다면, 생명 존중 사상에서 반대하는 것이 옳습니다. 만약 생명존중 사상에 입각해서 낙태를 반대한다면, 태어날 소중한 생명인 아이가 가장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는데에 신경써야합니다.


미혼모에 대한 인식이 나쁘면 당연히 태어날 소중한 아이가 힘들테니 미혼모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혼자 돈을 벌어 아이를 키우기 힘든 상황이니 많은 지원을 해야합니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필연적으로 미혼모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그들에 대한 제도적 도움을 함께 외쳐야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낙태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단지 '문란한 성생활을 한 여성에 대한 징벌'의 의미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 경우의 사람들은 낙태를 한 여자를 욕하면서, 미혼모도 욕하고, 아이에 대한 제도적 지원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낙태를 (남성을 배제한) '여성'에 대한 비난의 의미로 쓰는 순간 여성의 인권은 더욱 바닥으로 떨어지고, 미혼모들은 설 자리를 잃으며, 동시에 낙태율은 더 높아집니다.


정말로 (저처럼) 낙태를 반대하시는 입장이라면 한국의 미혼모들이 더욱 따뜻한 환경에서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어린 아이들이 제대로 된 성교육 없이 관계를 맺을 일 없이, 교육제도적으로 여성의 성 결정권에 대한 강의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힘써주세요.


남녀 모두가 건강하고 안전한 성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을 높여주세요. 올바른 성지식을 갖춘 성인들이 많아질 수록, 여성의 성적결정권이 신장될 수록, 낙태율은 낮아집니다. 


(*남성의 성적결정권은 여성의 성적결정권을 억압하면서 함께 억압 당하고 있습니다. '덮치지 않으면 남자도 아니다' 라는 말은 아까 말했던 남성우월주의의 부작용이지요. 우리 모두는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을 때 안할 권리가 있습니다....하지만 여성으로 하여금 성적 결정권을 빼앗는 순간, 즉 여성이 하고싶을 때 하고싶다는 표현을 못하도록 막는 순간, 남자는 '여성이 하고싶다고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묘한 텔레파시로 하고싶은 티를 내지만 겉으론 싫다는 말을 하는' 그 순간을 정확히 캐치해서 덮쳐야하는 의무가 주어지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등신, 잘못 해석하면 변태가 되는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여성이 성적 결정권이 제대로 보장되도록 힘써주세요. 그러면 여러분이 변태라고 오인받을 상황도 줄어들거예여!* )


미국 드라마에서 보았던 인상깊은 구절이 생각나네요. "만약 남자가 임신을 했다면 ATM기에서 낙태를 할수 있었을 거야."

"네가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사생아가 되고, 너는 미혼모가 되겠지.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아이 아버지를 뜻하는 말은 없어."

하고싶은 말이 많았는데 여기서 줄입니다. 제 말이 닿지 않을 것은 어느정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이제껏 현명한 말을 해오셨던 오유분들이, 반대 폭탄을 받고 차단당하는 일을 많이 보았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게 제 ... 두번째이자 마지막 글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더라도 요즘의 맘충 논란을 보면서 더 이상 조용히 하고 있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모두 안녕히.

http://ilwar.com/free/248182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기존 지식을 정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차단 당할 것을 알고 쓰셨다는 부분이 슬프네요.
한때 오유에선 대화가 통할 거라고 생각하고 키배를 떴던 기억이 떠올라서 급 뒷골 땡긴닭.
오유가 멀쩡해 보였던 이유는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한남 유저들이 멀쩡해서가 아니라 다 여성 유저들 때문이었다는 걸 왜 그땐 몰랐는지 모르겠닭.
여성유저 있던 시절엔 낙태 비범죄화하자는 댓글도 파란색으로 추천 먹고 그랬다농.
지금은? 너 메갈 너 낙태충 이 지랄하겠지 껄껄.
여시 사태 이후 대거 여성유저 이탈하자마자 더러운 한남 본색 드러나는 거 보소.
댓글이 너무뻔하게 예상된닭 그냥 논리가없네라면서 반박은못하고 무논리무논리 메갈년 빼애액거린것이분명하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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