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새 글

본격적인 우리나라 내 여혐 역사의 시작은 조선후기때부터였다고 합니닭.

pxvke명 읽음13개 덧글
http://www.podbbang.com/ch/7064

진짜역사 가짜역사 16.갑오개혁(2)

18분 41초부터 들어보시길 바라농.

헌데 이전부터 여혐 역사는 있었다고 많은 농부들이 그러더군요.

하지만 조선후기의 상황보다는 낫다고 봅니닭.

이렇게 판단하면 이때까지 잠재되어있던 여혐의식이

조선후기때 분출되었다고 볼 수 있겠군요.

누가 그러던데 남간충 궁물충의 DNA는 대를 이어 세습한다고 하던데

그게 맞는게 봅니닭.
http://ilwar.com/free/246555
그런 논리라면
현대 여성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사회 진출을 할 수 있으니 지금의 여혐은 조선 후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겠농?
여자는 삼 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는 일베에 비하면 난 여자를 좋아한다는 오유식 여혐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겠농?
조선 후기의 여혐이나 일베나 축적된 여혐의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한닭.
신화적 내용을 해설한 걸 어디서 봤는데, 두 부족이 합쳐져 건국하게 된 상황에 리더를 배출한 부족이 환웅(남성)으로 묘사되고 리더의 지위를 갖지 못한 웅족은 곰(여성)으로 표현된 것이라 합니다.
환웅=남자=신의 아들
웅녀=여자=곰(동물)=환웅(남자)이 은혜를 베풀어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임신도 시켜줌^^

ㅎㅎㅎㅎ...
글쎄요 본격적인 억압은 조선 후기겠지만 그 전부터도 여성의 타자화와 대상화 가부장제 등등은 이미 충만했던 것 같아요. 고조선 건국신화인 단군설화부터도 여혐적이고 조선 건국보다 훨씬 이전에 들어온 불교에서도 여혐이 있고 삼국시대에도 계백의 경우처럼 가부장의 일가족 살해가 전장을 나가기 전의 각오 따위로 미화된 것 등등 굉장히 많아요.

(실시되지는 않았지만) 여자 인구가 너무 많아서 일부다처제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하는데 반대경우가 가능했겠농?
재산은 딸아들 동등하게 나눠준다면서 왜 왕은 전부 남자였농? 왕가엔 아들만 태어나는 것도 아닐 텐데
조선보다 낫다고야 할 수 있겠지만 페미니스트라고 하기엔...
메갈리안의 야심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듯하닭 ㅋ
이글을 보니 유처취처(有妻娶妻) 라는게 갑자기 생각난다농.
말그대로 아내가 있어도 다른여성을 아내로 또 취하는 것인데,
물론 그 시대의 법률은 이를 엄히 벌했다농.

나농이 들은것은 거의 일제시대쯤의 사연인데, 
지방토호? 뭐 그런집 아들이 경성(서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어 오랜시간 아내와 함께 못지내게 되었다농.
그래서 그 아내가 저 유처취처를 남편, 시부모에게 권했다는 실화가.....
(본인은 시부모님을 모시며 집을 지킬테니, 남편은 서울에서 새로 결혼하라는 그런거)
유처취처로 얻은 아내가 낳은 아이는 적자로 인정받는다는게 첩이랑 다르다고 알고 있다농.

한편, 나농이 어느 유림분에게 저 질문을 드렸을때
질문:유처취처에 대해서는 어찌 보시나요?
대답:그것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속중 하나로써....
그렇게 따지면 할례도 그 나라 '남성들에게만' 아름다운 풍속이죠 어유 치가 떨리네요.
여혐은 사유재산 개념이 생기고 인류가 가정이라는 단위를 운영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가부장의 형태로 시작되었닭. 어느 시대가 더 심하고 더 낫고 따질만한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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