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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사회운동을 할 수 있는 법

tkefa명 읽음5개 덧글
페미니즘-LGBT 운동을 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인데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제거할 수 없고, 이것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도 마찬가지임.
이런 상황 속에서 차별과 억압을 없애려 갖은 노력을 다하는 건 어찌 보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회의감이 들 수도 있음.
그래서 이런 착각에 빠지기 쉬운데 
"나는 불행해.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 존재하는 차별은 없어지지 않으니 말이야."

사회운동을 해봤던 농들이라면 아마 이런 종류의 생각을 한번쯤 해봤을 텐데
사실 이 생각은 순전히 착각임.
우리들이 불행한 이유는 세상에 실재하는 '차별'이 여전히 존재해서가 아니라 '차별이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임.
차별이 없어지는 것이 우리의 운동 목표겠지만 차별은 없어질 수 없고 그게 현실임. 현실을 부정하면서 행복을 찾을 수는 없음.
따라서 차별이 없어져야 비로소 행복이 찾아온다는 생각은 스스로의 틀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고 그렇게 살면 평생 행복할 수 없음.
페미니즘과 LGBT 운동을 해나가는 것과 별개로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 내 자신을 위해 필수적임.
궁극적으로 사회운동을 하는 이유? 남 주기 위한 것 아니고 지금 내가 행복하기 위함인데 대의를 위한답시고 내 스스로 불행함을 느끼는 게 가장 멍청한 짓임. 공산주의 혁명이 멍청한 이유가 '지금 현실에 충실하고 행복한 것'과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죄다 부르주아식 사고로 싸잡아 매도해 버린 것임.

사실 미러링 빼고 한남한테 진심으로 화낼 필요 없는 이유가 이런 맥락에서임. 스스로 틀을 만들고 장벽을 쌓는 건 비단 젠더 문제에 국한된 것만이 아님. '~해야 행복하다' 식의 서술을 끝없이 늘어놓으며 '한남이 없어져야 행복하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 사라져야 행복하다'와 같이 내 행복에 끊임없이 제약조건을 걸어놓으면 행복해질래야 행복해질 수가 없음.
몇몇은 분노 없이는 사회 변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음. 정작 중요한 것은 현실 인식과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이지, 분노라는 것은 일시적인 도움을 줄지언정 이성적인 판단에 장애가 되고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방해물이 됨.
농들도 한남 때문에 자기 행복을 버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기를 바람. 한남은 그저 한남일 뿐 나 자신의 행복과 무관함. 한남 때문에 내가 불행한 게 아니라 '한남 때문에 내 삶이 불행해진다'는 스스로의 생각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뿐임.
http://ilwar.com/free/245931
나농은 차별은 사회의 그림자와 같다고 생각한닭. 우리가 차별이라고 생각되어지는 말과 행동 모두는 과연 애초에 절대적인 차별인가..차별자체는 천부인권처럼 애초에 정해져 있던것인가..라고 한다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닭. 차별은 인간의 사회화 과정에서 나온 부속물과 같은것으로.. 같이 모여 살기 위해 나왔고 해결해야 하는 과제처럼 생각되었닭.

이거 마치 인도얘기보는거같농
인도의 행복지수가 높다고 하는데, 실제 가보면 인권개차반이농. 신분제사회기도 하고.
얘네는 윤회나 전생을 믿기때문에 지금 힘든 것이 자신이 전생에 잘못을 많이 했다고 생각해서 순응하거나,
혹은 지금 힘든것을 참아내면 환생해서 더 행복하게 살수 있다고 믿는닭.
그래서 행복지수가 높다는 얘기가 있다농. 

무엇이 옳은가는 나도 모르겠지만, 이글을 보니 기운이 빠지는것은 사실이구농.
차별이 없어지길 바라는 게 아니라
차별을 성토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로 차별이 없는 세상은 당연히 범죄없는 세상처럼 허황된 생각이죠.
그러나 나를 차별하지 말라는 구호가 받아들여지고, 같이 생각해주고, 차별을 행하는 사람들을 성토하는 사회가 되고, 그리고 그걸 뒷받침하는 인식이 장려되고, 법으로 지원되는 그런 걸 바라는 거죠.

실제로 지금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에도 한남때문에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있다해도 그건 개인의 차원이고 개인이 극복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사회와 문화는 별개입니다. 사회와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불행한 건 당연한 겁니다. 그거에서 눈을 돌리려고 하면 진보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차별은 마땅히 성토되어야 하고 그러한 차별을 만들어내는 사회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콜라비마요님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러나 제 말의 요지는 조금 다릅니다. 사회와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불행한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바뀌지 전까지는 우리는 항상 불행해야 하고 그 불행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는 겁니까? 불행의 책임이 개인에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가 만들어낸 차별 때문에 불행이 생겨난다면 그 책임은 사회에 있으며, 이는 개인에게로 전가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행복/불행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입니다. 나의 불행이 사회 때문이라며 탓해도 그 결과는 온전히 개인에게로 돌아올 뿐입니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사회가 나의 행복을 좌우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나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책임 소재를 떠나 그러한 측면에서 말씀드린 겁니다.
행복, 불행, 만족, 불만족, 정의, 신념 이런것들의 정의가 다시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부터인지 저 자신은 행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모든것이 상대적 개념이라면,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한것이고, 뭐 대부분의 개념이 그렇겠지요.
게다가 그 행복이라는 두글자가 정확히 어떤의미인지 와닿지 않습니다. 대부분 행복이라는 단어보다 더 적당한 단어가 존재하더라고요.
만족이나, 편안함 등의 단어가 그런것이지요.
여기서도 또 한참 고민하던 것이 있는데, 그렇다면 편안함과 귀찮음이라는게 정확히 어떤 상태냐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일들이 사실 귀찮다라고 정의되기 쉽습니다. 심부름도 귀찮고, 방청소도 귀찮고, 회사일도 귀찮을 수 있습니다.
그럼 편안함이라는건 또 어떤걸까요...
저런 소소한거나 사회적인 일들을 안하는것이 편안함일까..이부분도 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마음먹기 따라서, 내 신념이든 가치관이든 그런것에 따라서
같은일도 보람있고, 재미있고, 안귀찮을 수 있는 일이되기도하고,
그 반대이기도 합니다. 물론 일반화 할 생각은 없어요. 제생각이고, 저만의 고민거리였습니다. 오래전부터요.

제 모든 활동의 원동력이나 지향점은 행복이 아닙니다.
만족감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하겠지요. 그것도 지향하는것이아닌 현실적 즉자적인 만족, 불만족에 따라 움직이고, 사고합니다.
하나하나의 만족감이 모이면 전반적으로 만족하는 생활이 되는것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전, 항상 그런건 아니겠으나, 가끔은, 아니 좀 잦은 빈도로
진심을 담아 한남에게 화를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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